약 10여년 전쯤의 일이다. 와다 히로미라는 일본 평론가가 자택에 작은 스피커 하나를 들이면서 몇 회에 걸쳐 칼럼을 발표했다.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짜리 스피커도 아니고, 200만원도 되지 않은 북셀프 스피커를 이렇게 정성을 들여 세팅하고, 분리형 앰프를 물려가며 소리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또 감동도 있었다. 곧 이 제품은 국내에도 수많은 유저를 만들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. 그 주인공이 바로 PMC의 TB1이다.
작은 사이즈에서 상상할 수 없는 저역과 다이내믹스. 그러면서 로 레벨의 뛰어난 해상도. 별로 멋을 부리지 않은 목재 인클로저의 2웨이 스피커지만, 추궁하면 할수록 끝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가진 제품. 아마 인티 앰프로 뮤지컬 피델리티의 A1이 누린 영화만큼이나 이 제품에 쏟아진 찬사와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다.
하지만 PMC는 소형 스피커 메이커는 아니다. 정확히는 스튜디오나 프로용 스피커를 만들며, 어마어마한 댄스 홀이나 디스코 덱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기본이다. 따라서 내입력에 강하고, 연속 사용에도 끄덕이 없이 견디며, 무엇보다 가공할 만한 저역을 낸다. 그들이 주장하는 트랜스미션 라인으로 만들어지는 이 자연스럽고, 풍부한 베이스는 한번 맛들이면 헤어날 길이 없다.
이래저래 PMC는 두터운 애호가 층을 형성하고 있으며, 최근에 아이(i) 시리즈로 버전 업하면서 또 한 차례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. 당연히 최근의 근황이 궁금했는데, 다행히 PMC의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담당하는 앤디 더필드(Andy Duffield)를 만날 수 있었으므로, 간략하게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봤다. 참고로, 이번에 PMC에서 정통 브리티쉬 스타일의 가정용 스피커로 팩트(Fact) 시리즈를 런칭하다고 하니, 이 부분 상당히 기대가 된다.
인터뷰어: 이종학
인터뷰이: 앤디 더필드
-우선 멀리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. 일단 이번 방한의 목적부터 잠시 설명해주시죠.
AD : 올해 5월에 열린 뮌헨 쇼에서 우리는 한국에 PMC를 핸들링할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습니다. 다행히 다빈 월드를 알게 되어 계약을 했습니다.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이렇게 찾은 것이죠. 또 그간 아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플래그쉽인 BB5까지 모든 라인 업의 버전 업을 마치고 이번에 새롭게 팩트 시리즈를 런칭하니까 이와 관련한 홍보도 필요했습니다.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방한한 것이죠.
-팩트 시리즈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설명을 듣기로 하고, 아무튼 라인업이 한층 다양해진 것 같은데요?
AD : AD : 그렇습니다. 기존의 스튜디오나 하이파이 외에 커스텀 인스톨레이션도 시작했고, 앞으로 더 범위가 확장될 것입니다. 팩트 시리즈는 그 일환 중의 하나죠.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쪽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파트너쉽을 유지할 회사가 필요해진 것이죠.
-여기서 잠깐 PMC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죠.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메이커이긴 하지만, 창업자에 대한 부분이나 역사에 관한 것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으니까요.
AD : 우리 회사는 약 2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. 창업 당시엔 두 명의 인물로 시작했는데, 바로 피터 토마스(Peter Thomas)와 아드리안 로더(Adrian Loader)입니다. 9년전에 아드리안이 암으로 사망했으므로, 현재는 피터 혼자서 경영과 설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.
-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군요?
AD : 토마스로 말하면, 원래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BBC에 취직했습니다. 여기서 BBC에 납품되는 각종 방송 장비, 스튜디오 기기 등을 점검하고, 선택하고 또 보수하는 일을 한 것이죠. 한편 아드리안은 방송이나 스튜디오 장비를 수입하는 FWO 부쉬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. 당연히 한 쪽은 납품하고 한쪽은 구입하는 쪽이었으니 대면이 잦지 않았겠습니까? 그러다 두 사람 모두 오디오파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급격하게 친해지게 됩니다.
-BBC를 베이스로 해서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오디오를 매개로 친해졌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.
AD : 여기서 두 사람은 스피커에 주목하게 됩니다. 그들이 보기에 프로용 제품은 정확하고, 디테일하긴 하지만 뭔가 정취가 부족하고, 하이파이쪽은 그 반대입니다. 이렇게 다이내믹스와 감성 모두를 두루두루 포괄할 수 있는 스피커가 없을까 고민을 시작한 것입니다. 이후 계속 만나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개진하게 됩니다.
-프로용과 하이파이의 장점을 융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스피커가 탄생할 수 있죠.
AD : 우선 쉴드된 캐비넷 스피커, 즉 밀폐형부터 연구합니다. 물론 퀄리티는 괜찮습니다. 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게 문제입니다. 게다가 적절한 저역을 얻으려면 큰 유닛이 필요하고, 더 큰 캐비넷이 만들어져야 하는데, 그럴 경우 왜곡도 더 커지게 됩니다. 이어서 포트를 장착한 타입을 연구하게 됩니다. 물론 이 방식도 장점이 많지만, 우선 음이 자연스럽지 않고, 저역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.
-그래서 결국 트랜스미션 라인에 다다른 것이군요.
AD : 그렇습니다. 물론 이 방식은 저희가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. 이미 20세기 초에 개발된 것으로, 당시 업계에서도 거의 채용하지 않았습니다. 일부 개인이 취미 삼아 만든 정도였으니까요??
-20년전쯤에 TLD라는 회사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?
AD :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습니다. 그리고 저희의 기술은 ATL(Advanced Transmission Line)이라는 특허를 갖고 있습니다.
-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.
AD : 저희가 처음 만든 스피커는 BB5라는 제품으로, 19년 전에 만들었습니다. 이것을 갖고 BBC에 의뢰했더니 합격 통지가 날아왔습니다. 즉, 채택해서 사용하겠다는 것이죠. 한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. 당시 피터는 BBC 소속이었습니다. BBC 직원이 만든 제품을 BBC가 사들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? 말하자면 BBC에 계속 남으려면 스피커 제조를 그만둬야 하고, 스피커를 공급하려면 퇴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.
-참 행복한 고민이군요. 당연히 사표를 써야 하지 않겠어요?
AD : 맞습니다. 이렇게 해서 둘은 정식으로 회사를 만들고, 제품을 본격적으로 제조했죠. 한편 BBC에서 채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군데에서 문의가 왔습니다. 그 중 메트로폴리스라는 유명한 스튜디오가 구입을 원했으므로, 순식간에 PMC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. 그 후 오디오파일에게도 알려져서 컨슈머 시장에도 진입,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.
-트랜스미션 라인이라고 해도, 20년 전과 지금은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생각되는데요?
AD : 그렇죠. 이 방법을 쓰려면 우선 스피커 유닛의 보이스 코일부터 달라져야 합니다. 가볍고 플렉시블하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나야 합니다. 또 의외로 캐비넷의 재질에 민감하므로, 양질의 목재를 구해야 합니다.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설정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습니다. 저희는 지금도 이런 쪽에 많은 인력과 예산을 할애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.
-현재 PMC 제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, 대표적인 소비자들은 누구일까요?
AD : 당연히 BBC가 거론되고 또 헐리웃의 여러 스튜디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. "헐크" "식스 센스" "007 다이 어나더 데이" "시카고" "2 패스트 2 퓨어리어스" "빅 피쉬" "스파이더 맨 3" 등이 모두 저희 제품으로 모니터해서 이뤄진 작품들입니다.
칙 코리아, 브라이언 메이, 콜드플레이 등의 뮤지션들이 저희 제품을 애용하고 있으며, 뉴욕에 있는 애틀랜틱 레코드사 역시 저희 고객입니다. 그 외에 수많은 레스토랑, 디스코 덱, 클럽 등에서 PMC를 사용하고 있습니다.
-짧은 시간에 이토록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스피커는 PMC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군요. 그럼 제품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? 이번에 새로 아이 시리즈가 나왔는데, 기존 제품과는 어떤 점에서 차별화가 될까요?
AD : 우선 캐비넷의 재질이 바뀌었습니다. 보다 높은 퀄리티의 재질로 만들었습니다. 또 유닛의 개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. 트위터의 경우 솔로넥스(Solonex)를 사용해 제작했는데, 이전보다 훨씬 파워 핸들링이 증가했습니다. 대역폭도 넓어져서 고역은 무려 30KHz까지 올라갑니다. 당연히 이미징이 더 정확해졌습니다.
그 외에 미드레인지 부분은 내부의 챔버를 완전히 저역부와 분리시켜 음향적으로 보다 정밀을 기했다거나, 트랜스미션 라인을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등, 여러 면에서 개선이 이뤄졌습니다. 또 패시브뿐 아니라 액티브 버전이 있으므로, 향후 애호가들의 선택 폭도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.
-그러고 보니 오디오 쇼 부스에 가면 PMC는 꼭 브라이스턴 앰프와 매칭이 되어 있더군요. 별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?
AD : 저희는 브라이스턴의 영국 대리점을 맡고 있습니다. 반면 브라이스턴은 PMC의 캐나다 대리점을 맡고 있고요. 이런 이유로 긴밀한 협조 관계에 있습니다. 심지어 액티브형 스피커를 만들 때 파워부에 브라이스턴에서 공급하는 앰프를 개량해서 넣을 정도니까요. 하지만 굳이 브라이스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. 애호가의 취향에 따라 매칭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?
-최근 아이 시리즈를 들어보니 사운드 면에서 좀 변화가 감지됩니다. 이전에는 다소 스튜디오 지향이라고 할까, 약간 중립적이고 냉정한 분위기였다면, 이제는 좀 더 스위트해지고, 밝아진 느낌이 듭니다. 개인적으로 이런 변신이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.
AD : 오디오는 작은 개량이 큰 변화를 몰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. 특히 아이 시리즈는 고역을 더 오픈했으므로, 그에 따라 음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. 애호가 입장에서는 좋은 쪽으로 다가갈 것입니다.
-이제 팩트 시리즈가 런칭되었는데, 아이 시리즈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?
AD : 이것은 완전히 컨슈머 형으로 제작되어, 정통 브리티쉬 스타일을 많이 따랐습니다. 물론 제작비가 훨씬 더 비싸고, 인클로저 재질 같은 부분도 더 고급스럽습니다. 미드레인지는 보다 더 앞으로 음이 나오도록 튜닝했습니다. 당연히 가격도 올라가죠.
-PMC에서 본격적으로 컨슈머 지향의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빅 뉴스입니다. 뒷면을 보니 여러 가지 설정을 하도록 되어 있군요.
AD : 그렇습니다. 크게는 하이와 로우 레벨을 조정할 수 있는데, 하이는 2dB 정도 더 부스트할 수 있는 옵션이 있고, 로우는 3dB와 6dB를 각각 커트할 수 있는 초이스가 있습니다. 이 두 개의 스위치를 이용해서 애호가의 취향이나 리스닝 룸의 공간에 맞게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습니다.
-입력 감도가 높은 만큼, 진공관 파워 앰프를 매칭해도 좋을 듯 싶군요.
AD : 당연하죠. 어지간한 앰프를 물려도 충분히 구동할 수 있습니다.
-현재 PMC에는 직원이 몇 명 근무합니까?
AD : 총 35명 정도가 있습니다. 물론 B&W와 같은 회사에 비하면 작지만, 모든 공정이 인하우스 팩토리로 제작된다는 점은 영국의 스피커 메이커 중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합니다. 저희는 절대 다른 나라에 하청을 주지 않으니까요. 그리고 제조 공정에는 약 15명 정도가 투입되는데, 물론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합니다.
-아무튼 이번에 새롭게 시리즈를 개량하고 또 팩트 시리즈를 런칭하면서 여러 모로 바쁜 시즌이 도래할 것 같습니다. 아무쪼록 한국측의 새로운 파트너와 잘 협력해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바랍니다.
AD : 감사합니다.